박인환 얼 선양사업 누가해야 하나

                                                                       한  명  숙

                                                                       한국문인협회 인제군지부장

2009년 9회까지 박인환문학상을 계간 시현실과 공동주관 하여오다 2010년 박인환선생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전국적인 행사로 발돋움하기 위한 취지로 ‘박인환시문학상’을 새로이 제정하여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한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부장이 부덕한 탓인지 올해도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2회째 치르고 오리무중이다,

박인환문학상의 위상을 높이고 지역의 인적자원으로 키워나가야 할 중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4년차를 맞이하는데도 2회 수상자밖에 내지 못했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보다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우선은 여태껏 박인환문학제를 주관 주최하여 온 인제문협의 지부장으로서 과연 박인환문학제가 여기에 머물러야 될 일인지, 아니면 지역의 사안으로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야 할 일인지 미숙하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1953년 7월 마침내 휴전협정이 타결되고 전쟁은 종식됐다. 모두들 고난의 피난살이를 마치고 속속 서울로 귀환한다. 박인환도 7월 중순경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왔다. 시가전과 폭격으로 인해 건물들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그 잔해들 사이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났다.

박인환은 세종로 옛집으로 돌아와 반파된 집을 어렵사리 수리하여 그럭저럭 생활거처를 마련했다. 폐허의 거리, 무질서와 혼돈의 거리 그러나 청춘과 낭만의 거리 명동한복판에 박인환은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입장한 것이었다. 활자로 나와 있는 이봉구의 증언에 따르면 박인환은 밥만 먹으면 명동에 뛰쳐나와 방황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죽을 때까지 지속됐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를 가히 명동의 백작이라 부를 만 했다. 그의 나이 31세 아직 시퍼런 청춘이 살아있는 나이였다. 더구나 한번 만나야 할 죽음이지만 그에게는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급작스럽게 다가왔다.

1976년 박인환의 20주기 때 그의 맏아들 박세형에 의해 시집 <목마와 숙녀>가 간행되었다. 그리고 그 시집은 2만부나 팔려 나갔다. 박인환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시그널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조그마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긴 겨울의 포신이 드리워졌던 망우리 산자락 그의 묘비에는 ‘세월이 가면’ 1연이 가버린 그를 쓸쓸하게 기린다. 1956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그 해 9월에 세워진 묘비는 풍파와 세파에도 그 자리에 꿋꿋하게 서있다. 

그의 생애는 짧다. 겨우 31년이다.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金海卿), 1910~1937) 보다 조금 더 살았다. 그래봐야 4년이다. 박인환은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1956년 3월 ‘죽은 아포롱’을 발표한 3일 후 세상을 떠났으니 시의 이력 10년, 참으로 짧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10년의 세월동안 그만큼 사후 조명을 받은 시인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비평의 대상이 돼 평론가들에게 조명을 받은 게 아니다. 대중에겐 읽혀지는 시인이지만 비평계나 시인론 혹은 평론집에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다루어졌다면 김수영의 시인론에서 박인환이 묻어나오거나 김경린이나 김규동의 글에 의해 언급되는 게 고작이다.

해방이전에 등단했던 김수영, 김춘수, 신동엽 등이 사후에도 끊임없이 비평의 대상이었던 데 비해 박인환은 열외였다. 박인환이 시론의 대상으로 거론된 게 극히 미비했다면 이는 박인한의 불우한 시대적 상황에 기인한다.

그는 일본어로 교육받고 자랐으며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우리말을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제대로 갖지 못한 불우한 시대를 살았고, 그의 고향인 인제에서 너무 등한시 했다는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얼 선양사업으로 지정된 박인환문학관이 겨우 10년이 된 지금에야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우리들 곁에 왔고, 박인환문학관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불과 2~3년 전부터 추진해 온 여초기념관이나 한계리 예술인촌 공립미술관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물론 여초기념관이나 공립미술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청년기는 6.25의 정신적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좀 더 깊고 넓게 세계를 볼 수 있는 사유의 시간을 전쟁은 앗아갔고, 대신 추상적 센티멘털리즘과 울분의 세계에 침잠하게 했다. 시인으로서의 박인환은 분명 불행이었다. 그만큼 짧은 시간을 치열하게 살다간 시인은 극히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문학을 이야기하자면 박인환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전체를 보지 못한다. 아마존의 나무는 시시각각 쓰러지고 있으며 산은 깎이고, 미디어는 광고주를 위해 움직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점차 경시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꾸자는 캠페인은 공허하게 울릴 뿐 이다.

김종철은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를 ‘생태론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과 자연만물을 서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공동체’란 하나의 테두리 속에 공존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만약 인간이 자연을 단순히 물질적인 자원으로 이용하는 데만 그친다면, 인간이 다른 인간을 다양한 형태의 힘으로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의 관점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김종철은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 자체를 변화시켜야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 바로 ‘시’라고 보았다.

양평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황순원문학관을 그의 단편소설「소나기」중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라는 두 문장에 기대어 3년간 124억원을 투입하여 황순원문학관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문학관 옆에는 황순원 선생 부부 묘소가 있는데 2009년 3월 천안시 병천면 풍산공원묘원에서 그곳으로 이장했다.

황순원 선생은 양평과 어떤 인연일까. 이북(평남 대동) 출신이어서 아무 지역적 인연이 없는데도 굳이 찾자면 작품 속에 숨은 그림처럼 엎드려 있다. '소나기' 속에서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글이 분명히 존재한다. 양평군은 이 한 문장에 기대어 3년간 124억원을 투입한 것이다.

황순원(黃順元) 묘역에 보면 20세기 격동기의 한국문학에 순수와 절제의 극(極)을 이룬 작가 황순원 선생(1915~2000) 일생을 아름답게 내조한 부인 양정길(梁正吉) 여사(1915~ 생존) 여기 소나기마을에 함께 잠들다. 글씨는 황재국이 썼다. 

언제가 한 번 찾아갔던 황순원문학관을 보면서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인제'라는 지역 명칭 앞에는 물론 청정지역, 모험레포츠, 내린천 등등의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목마와 숙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양평군이 단지 지역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설프게 문학 공부를 하면서 나 자신이 자주 묻곤 하던 질문은 '왜 문학을 하는가?',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였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고 그 시공간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이런 요소들은 서로 밀고 당겨가며 사람살이의 윤택함을 보장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경제와 문화는 물질적 정신적 측면에서 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간에게 먹고 배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먹지 못해도 병이 생기지만 배설하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중요하고 우선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할 때 우리는 배설하는 문제, 즉 문화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차순(次順)으로 미루곤 한다. 하지만 식성(食性) 간 우열이 없듯이 경제와 문화에도 먼저와 다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잘 먹고 배설해야 건강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듯이 사회도 생산과 소비가 원활할수록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욕망의 소비체계인 문화가 경제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인간의 욕망을 건전하게 승화시켜주는 예술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문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어설픈 논리로 장황하게 늘어놓아야 하는지... 이만큼이면 우리가 왜 박인환문학제를 힘들게라도 치러야 하는지, 인제에서 박인환선생의 얼을 기리고자 하는 일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박인환 얼 선양사업 누가 해야 하는 것인가? 물론 군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치러 나가야 할 과제이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직능별로 일을 추진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지자체에도 각 과가 있고 부서가 존재한다. 그렇게 세부적으로 나누어 행정을 처리하는데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박인환문학제를 사단법인인 한국문인협회 인제군지부가 하는 것은 잘못된 것처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헐뜯지 못해서 안달이다.

요즘에는 복지서비스도 경쟁하는 시대이다. 하물며 문학이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새로운 단체를 만들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예산 다툼이나 하라는 것은 아니다. 선의의 경쟁은 있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다.

박인환문학제, 박인환시문학상은 당연히 인제문협이 주축이 되어서 하는 게 마땅하다. 다만 선생의 얼을 기리고자 하는 일에는 군민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전혀 연고도 없이 다만 소설의 한 구절을 놓고 124억이나 들여 문학관을 짓고 부인의 묘까지 만든 양평군에 비하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문학과 낭만이 살아 숨쉬는 곳, 인제에서는 박인환선생을 재조명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물론 문학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박인환선생은 이곳 인제에서 키워나가야 할 인적자원인 것만은 분명하다. 인제문협이 박인환추모백일장 24회째, 전국대학생공모전 8회, 새로이 제정한 신바람 나는 병영문학상 1회를 치루는 동안 소수의 인원으로 치룬 행사치곤 나무랄 데 없는 행사로 거듭났다.

앞으로도 선생의 얼을 기리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박인환시문학상 또한 선생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문학정신을 계승하는데는 손색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회 새로이 상을 제정하면서 전국문인 400명이 인제를 찾았다.

문학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서고, 나라가 바로서야 국민이 행복해진다. 앞으로도 박인환 얼 선양사업은 당연히 한국문인협회 인제군지부가 주축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역량이 부족하여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행정이나 군민모두가 발벗고 나서서 한마음이 되어주기를 희망하여 본다.

** 김명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를 인용한 부분도 있음.